0.
악마였다.
그것 말고는 그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으리라.
벌써 5년째.
그것은 항상 꿈이 나타나 나를 씹어 삼켰다.
허나 오늘은 달랐다.
그것은 그저 나를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덤벼봐.”
평소보다도 긴장됐다. 평소와는 다른 상황만큼 분위기 또한 평소와는 달랐다. 그저 긴장감뿐이었지만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덤벼!”
다시 한번 말했다.
‘제발 덤벼라! 평소처럼 날 물어 뜯고 씹어 삼키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난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단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덤비지 않았다. 그저 섬뜩한 포효만을 방출하고 있을 뿐.
좋다.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면 된다.
“먹어보라고. 바보 짐승아.”
도발이 통했는지 앞으로 나가는 나를 보고 반응한 건지 그것이 입을 크게 벌렸다.
‘좋아. 덤벼. 평소처럼 날 물어 뜯어라! 이런 꿈 따위는 얼른 깨버려!’
그리고는 그것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됐다. 이것으로 꿈에서 깨어 날 수 있다.
그 순간이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드는 그것이 누군가에게 따귀를 맞고 날아갔던 것은.
순간 놀랐다. 그저 멍하니 내 앞에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뒤를 돌아보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의 소녀였다.
왜인지 남자 옷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던 그 소녀는 잠시 동안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 그러면 안돼요! 맘대로 그러시면 곤란해요!”
…
“저, 저기요? 정신 차리세요.”
잠시 동안 멍하니 있던 정신을 황급하게 잡아 정상 작동 시켰다.
그것이 정상 작동이었는지 아니면 오작동이었는지 입에서 나온 말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힘이 세구나.”
“네?”
“힘이 세다고. 저 큰걸 한방으로 날려버리다니.”
확실히 저기에 버려져 가끔씩 반응만 하는 저것은 더 이상 악마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불쌍해 보였다. 우와, 피도 토한다.
“그, 그것도 나름대로 힘 조절을 한 건데.”
뭐 그런 건 어찌돼도 좋다. 중요한 건 이 꿈을 꾸기 시작한 후 5년 중 오늘이 유일하게 이 악몽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뭐. 일단은 고맙게 생각해. 덕분에 살았다. 정말 고마워.”
근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꿈속의 인물에게 이런 소리를 한다고 해도 이건 그냥 혼자 노는 꼴이지.
“아니요. 괜찮아요. 제 일인걸요.”
일?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아이를 알고 있었나? 모르는 아이다. 아무리 그것에게 물어 뜯기는 것이 무서웠다고 해도 그 순간에 여자아이를 생각해낼 정도로 난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그럼 이 소녀는 누구지?
“저기. 넌 누구야? 난 너를 모르는데.”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대답했다.
“저도 당신을 몰라요. 전 그냥 당신이 스스로 먹히려고 하기 때문에 그걸 막은 것뿐이에요.”
“스스로 먹혀?”
“당신이 도발했잖아요. 저걸.”
소녀가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볼 때마다 불쌍하다. 눈이 흐릿한 게 완전이 간 것 같다.
“아무리 꿈속이지만 저런걸 보니까 속이 불쌍하네.”
“꿈이요? 아닌데요. 이건 꿈이 아니에요.”
그래. 꿈이 아니…. 어? 꿈이 아니라고?
“뭐?! 꿈이 아니라고?!!”
갑자기 높아진 목소리에 소녀는 기가 죽었는지 잔뜩 몸을 움츠렸다.
“네. 이건 꿈이 아니에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아니 여기는 당신의 마음이에요.”
마음. 그것은 감정과도 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
“사람마다 마음의 모양은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여긴 너무 어두워요.”
확실하게 어둡기는 했다. 어두워도 너무 어두웠다.
“계속 여기 있을 건가요?”
소녀가 나를 보고 말했다.
“여기 있을 거라니?”
“어떻게 여기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나가는 게 좋아요.”
잠깐. 나가라니? 여기가 내 마음이라며?
“나가라니? 내가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되는 건데? 내 마음은?”
소녀는 웃었다. 아주 희미한 웃음이었지만 확실히 웃고 있었다.
“마음에서 나가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나가야 하는 건. 바로 이 추악한 뒷면.”
“뒷면? 무슨 뜻이지?”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대답이 없어 소녀를 돌아 보았다. 그 순간 소녀가 사라졌다. 말 그대로 눈 앞에서 깔끔하게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뭐야? 여, 역시 꿈이었던 건가?”
그래. 꿈이었다. 결국은 꿈이었던 것이다. 하하하.
“아니요. 꿈이 아니에요.”
다시 한번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길. 역시 꿈이 아니었나 보다.
“잠깐. 어디야? 어디서 말하는 거야?”
주위를 둘러보며 소녀를 찾았다. 그러나 소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에, 아무래도 찾기 어려우신 모양이군요. 밑을 보세요. 밑을.”
그랬다. 목소리는 발 밑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밑을 봤다.
소녀가 있었다. 놀랍게도 소녀는 땅 건너편에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간 거야?”
놀랐다. 땅 건너편에 있는 게 놀라운 게 아니었다.
소녀는 마치 자신 또한 밑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포즈를 하고 있었다.
“이제 결정할 때군요.”
“뭐?”
“언제나 거기에 머물면서 과거를 생각할지, 내 손을 잡고 양지로 나와 미래를 바라볼지.”
“미래?”
그랬다. 언제까지고 가족이라는 과거에만 있을 수는 없다. 나만이라도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이 소녀가 그것까지 알고 있는 건가?
“시간이 없군요. 저게 일어나겠어요.”
확실히 위험했다. 아까 날아갔건 그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잠에서 깨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화가 난 것 같아요.”
당연하지. 뺨 맞고 기분 안 나쁠 리가 없다.
“잡을 거에요? 그냥 있을 거에요?”
일단은 살고 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오늘은 기분 정말 안 좋은 것 같다.
황급히 소녀의 손을 잡았다. 분명 사이에 땅이 있었음에도 소녀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소녀가 내 손을 당겼다. 땅이 가까워져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고통은 없었다. 그저 그대로 난 땅으로 빨려 들어갔으니까.
마치 물과도 같았다. 물거품이 사방으로 퍼져있었고 거품들은 위를 향해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말씀을 안 드렸군요.”
무엇을?
“제 이름을.”
이름?
“네. 제 이름은.”
아, 이런. 때가 됐나 보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진다.
“엘 세인트 스피릿.”
그렇구나. 엘. 이 소녀의 이름.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이 현.”
내 이름을 알고 있네. 이거 참. 이 녀석.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수 많은 물거품 속에서 의식이 끊기는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애석하게도 이 소녀, 엘이 입고 있던 남성용 청바지와 갈색 털 점퍼였다.